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캅카스(코카서스)여행(20220912~0923) / (5) 조지아 고리 스탈린박물관, 우프리스치케

april그이 2023. 2. 10. 21:54

2022/9/16(5일차)

고리(Gori)는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서 서쪽으로 1시간 30분정도의 거리에 있으며, 스탈린의 고향이다.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은 1927년 독재체제를 수립하여 1953년 사망시까지 26년간 소련의 최고권력자로 군림했다.
고리에는 스탈린생가를 포함하여, 그의 공산당 지도자로서의 활동에 관한 자료, 개인소장품이나 의복등을 전시한 스탈린박물관(Stalin Museum)이 있으며, 박물관 한켠에는 스탈린이 타고 다녔던 전용열차가 전시되어 있다.
고리에서 구두수선공 베사리온의 아들로 태어난 스탈린의 본래 이름은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주가슈빌리( Iosif Vissarionovich Dzhugashvili)였으며,
강철사나이란 뜻의 스탈린(Stalin)은 젊은 시절 그의 필명이었으나 정치에 입문한 이후 본명처럼 쓰이게 되었다.
스탈린은 어린시절 아버지가 술주정뱅이였던 까닭에 이곳 저곳을 떠돌며 살아야 했으며, 이시기에 마차에 치여 왼팔을 다쳐서 평생 불편한 장애로 남았으며, 이것 때문에 왼손을 주머니에 넣은 스탈린의 전신상이 많다.
1903년 레닌이 이끌던 볼세비키당에 정식으로 입당했고, 1917년 2월혁명(전제군주국이었던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고 러시아공화국이 수립된 혁명)으로 총리간 된 알렉산드로 케렌스키 정부의 혁명세력 탄압으로 볼세비키 간부들이해외망명 상태가 되자 스탈린은 임시적으로 러시아 볼세비키 대표가 되었으며, 이때 레닌의 무장봉기 노선을 지지하며 1917년 10월 볼세비키 주도의 혁명(러시아공화국이 멸망하고 러시아 소비에트공화국의 수립된 혁명)을 성공시킨후 소비에트 러시아의 최고권력자중 한명이 되었다.
이후 혁명영웅이었던 트로츠키를 몰아내고, 정적제거, 대숙청 과정을 거치면서 절대권력을 확립했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후 본격적인 우상화, 신격화 작업을 통하여 소련에서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원래 의심이 많았던 스탈린은 노년이 되자 자신에 대한 암살이나 테러에 대한 의심도 더욱 심해져서 측근 인물들에 대한 긴장까지 늦추지 않았으며, 관저보다는 흑해연안의 별장에서 이중 삼중의 경비를 세워 생활하다가 1953년 3월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스탈린박물관 (출처 Google)
스탈린 생가 (출처 Google)
전시관내부 / 연대기별로 정리되어 있다.
스탈린 전신상
스탈린 전용열차

고리에서 동쪽으로 10Km정도 떨어진 곳, 구글지도상으로 쿠라강변에 BC10세기에 건립이 시작된 동굴도시 우프리스치케(Uplistsikhe Cave Town)가 있다.
신들의 요새라는 뜻의 우프리스치케는 전성기에는 정치,종교,문화의 중심지로서 5천~2만명의 주민이 거주했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으며, 거주지역 상,하수도시설, 감옥과 극장, 약국, 와인저장고등 공동구역이 구분되어 있다.
4C 기독교가 조지아의 국교로 공인된 이후 당초 태양신을 섬기던 이곳을 파괴한 기독교인의 터전이 되었다가 1240년경 몽골의 침입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어 도시의 절반이상이 파괴되었으며, 정상부에는 10C에 건립된 왕자교회(Church of Prince/Uplistsulis Eklesia)가 소박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우프리스치케
우프리스치케
우프리스치케 왕자교회

우프리스치케는 튀르키에의 카파도키아와 유사한 동굴구조인 듯 보이기도 하는데 이곳 암질이 모래가 굳어져 형성된 사암이고 카파도키아는 화산폭발로 인한 분진이 내려앉아 굳어진 응회암이어서 둘다  비교적 뚫기가 쉬운 공통점이 있으나, 카파도키아가 박해를 피하기 위한 기독교인들의 은신처였던 것과 달리 이곳은 공동체 도시를 형성하였던 주거지역이었다.

튀르키에 카파도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