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19(8일차)
(1)
그리스 북부 테살리아지방의 ‘보이오티아’왕국의 왕 ‘아타마스’와 왕비 ‘네펠레’에게는 쌍둥이 남매 ‘프릭소스’와 ‘헬레’가 있었는데 아타마스왕이 보이오티아 동쪽지방의 ‘테베’왕국에 갔다가 테베왕국의 공주 ‘이노’의 미모에 반해 아내 네펠레를 내쫒고 이노를 새 왕비로 맞았다. 이노는 전처소생인 쌍둥이 남매를 죽이려고 각가지 음모를 꾸며 왕 아타마스가 쌍둥이 남매를 신에게 제물로 바칠 결심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때 쫒겨나 동굴속에 숨어 살던 남매의 어머니 네펠레가 신들에게 간절히 빌었고, 이를 불쌍히 여긴 제우스는 남매가 제물로 바쳐지기 직전에 황금양을 보내 남매를 등에 태우고 보이오티아를 탈출하도록 했다. 황금양이 산과 들을 지나 바다위로 날기 시작하자 현기증을 느낀 헬레는 그만 추락해서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으며, 프릭소스 혼자만이 흑해를 건너 ‘콜키스’왕국(지금의 조지아 서부지역)에 도착했다. 콜키스의 왕 ‘아이아테스’는 그를 보고 신이 내린 선물이라 생각하여 환대했고, 프릭소스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신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황금양을 잡아 제물로 바치고, 그 털가죽은 벗겨 아이아테스에게 바쳤다. 황금양털에 대한 신탁이 내리기를 “이 양털이 있으면 나라에 번영을 가져다 주고, 잃어 버리면 곧 나라에 불행이 닥치리라”라는 것이었으므로 콜키스왕 아이아테스는 황금양털을 아레스 신에게 바친 숲에 보관하게 했고, 이를 잠들지 않는 용에게 지키게 했다.
(2)
그리스 북부 테살리아 지방의 ‘이올코스’왕국의 왕이었던 ‘아이손’은 씨다른 형(異父) ‘펠리아스’에게 쫒겨 났으므로 그의 아들 ‘이아손’은 켄타우로스(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말인 종족)에 의해 양육되었다. 성인이 된 이아손이 펠리아스를 찾아와 왕위를 돌려줄 것을 요구했을 때 펠리아스는 이아손을 없애 버리기 위해 “동방의 콜키스로 가서 황금양털을 구해 오면 요구대로 왕위를 주겠다”는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을 내건다.
신과 인간의 피를 받은 영웅 이아손은 전쟁의 여신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거대한 배를 건조하고, 가정의 신 헤라의 도움을 받아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 아스클레피오스등 그리스의 여러 영웅들을 모아 ‘아르고원정대’를 만든다. 수많은 어려움 끝에 콜키스 왕국에 도착하여 콜키스 왕 아이아테스를 만나 황금양털을 달라고 부탁했으나 아이아테스는 이아손에게 “다른 영웅들의 도움없이 입에서 불을 뿜는 사나운 청동소에게 멍에를 씌워 땅을 갈고, 거기에 용의 이빨을 뿌리면 황금양털을 주겠다”는 불가능한 과제를 낸다. 이아손이 난감해 하는 상황에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아이아테스의 딸 ‘메데이아’가 이아손에게 반하게 만들었으며 메데이아는 마법의 약을 써서 황금양털을 지키는 용을 잠들게 하고, 황금양털을 훔쳐 이아손과 함께 아르고호를 타고 콜키스에서 도망을 친다. 또다시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테살리아로 돌아왔으나 테살리아의 왕 펠리스는 당초부터 왕위를 넘겨 줄 마음이 없었으므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데, 이에 메데이아는 또다시 마법의 약을 이용해서 펠리아스왕을 삶아서 살해하는 방법을 택했고 이런 잔혹함에 반발한 신하와 백성들의 반란으로 테살리아에 머물 수 없어 ‘코린토스’로 달아나 아이들을 낳고 살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의 딸 ‘글라우케’에게서 청혼을 받자 권력이 탐이 나기도 하고, 메데이아의 잔혹함에 질려 버린 이아손은 메데이아를 버리고 글라우케와 결혼했으며, 이에 격분한 메데이아는 왕과 신부, 자신의 두아들을 죽이고 멀리 도망가 버렸고, 실의에 빠진 이아손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리스 신화 / 나무위키의 내용 정리)
바투미의 유럽광장에 황금양털을 손에 든 메데이아의 조각상이 서 있는 이유이다.
흑해연안의 도시 바투미(Batumi)는 진작부터 이 도시나 조지아와 연관된 신화나 야사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을 개발해서 관광자원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화이지만 부정적 문화유산(Negative Heratage)인 메데이아의 이야기까지 조각상을 만들었다.
조각상은 2007년에 세워졌는데, 오늘날의 약(Medicine)의 어원이 이 신화에 나오는 메데이아(Medea)이다.
1910년대 초반, 러시아 지배하의 아제르바이잔(Azerbaijan) 바쿠(Bacu).
알리(Ali khan Shirvanshir)와 니노(Nino)는 아직 학생이지만 서로 사랑했다. 알리는 페르시아계로 아제르바이잔에서 석유재벌인 명문가의 자식이어서 유럽에서 교육을 받은 시아파 이슬람교도였으며, 니노 역시 조지아의 명문가 가문으로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공주’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받은 기도교도 아가씨였다.
알리의 아버지 허락을 받아 니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결혼하기로 하였지만 알리의 친구이자 아르메니아인 기독교도인 멜렉 나차르얀(Melek Nacharyan)이 니노를 납치하여 바쿠에서 도망치고, 알리는 말을 타고 따라가 그를 찔러 죽인다. 살해된 친구의 가족들이 알리에게 보복하려고 하고, 검찰도 알리를 기소하려고 하자 알리는 이슬람교도들로 구성된 다게스탄(Dagestan)의 산촌마을로 피신하고 니노가 그를 찾아와 두사람은 그 자리에서 결혼한다.
1917년 10월 볼세비키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소비에트 연맹이 결성되면서 바쿠의 이슬람교도들은 소련과 전쟁을 하게 되자, 알리는 니노를 데리고 친척들이 있는 테헤란으로 간다. 테헤란에 머무는 동안 “여자는 영혼(spirit)이 없고 아이만 많이 낳으면 된다”는 이슬람식 사고에 따라 가족외에 다른 남자의 출입이 금지된 하렘(Harem)에 갇혀 사는 신세가 된 니노는 불만을 가지게 된다.
튀르키에 군이 러시아와의 전쟁에 참전하여 바쿠를 점령하면서 아제르바이잔에 민주 공화국이 출범하자 알리와 니노는 돌아왔고, 튀트키에군 철수한 후 영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자 영어를 구사하는 알리와 니노는 정부행사의 호스트 역할을 맡게 된다.
하지만 영국군이 철수하고 다시 러시아군이 아제르바이잔으로 진군하자 알리와 니노는 그동안 낳은 딸과 함께 서부의 간자(Ganja)지방으로 이주하지만 러시아군이 바쿠를 점령하고 간자지방도 집중공격을 받게 된다.
니노는 딸을 데리고 조지아로 피신하지만, 알리는 싸우다 죽는 가문의 전통에 따라 떠나기를 거부하고 마을을 지키다 장렬하게 전사한다.
그리고 아제르바이잔 민주공화국은 1920년 무너지고 소련의 일부가 되고 만다. (1930년 오스트리아 소설 ‘알리와 니노’중의 내용...소설의 저자는 쿠르반 새이드(Kurban Said)란 별칭으로 알려졌다)
바투미가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관광자원화 한 것 중 또 하나가 알리와 니노의 조형물이다. 흑해바닷가에 서 있으며, 2010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기념해서 조지아 타마라 크베시타제(Tamara Kvesitadze)가 만들었다.
강철로 된 얇은 수평띠를 좁은 간격으로 층지어 만든 알리와 니노는 정해진 시간에 서로를 향하여 다가가서 합쳐졌다가 다시 멀어진다.
메데이아 조각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넵툰(Neptune/포세이돈) 분수대 역시 바투미의 관광자원중 하나이며, 이탈리아 볼로냐의 네투노광장에 16C에 세워진 쟝드 볼로뉴(Jean de Boulogne)의 조각상 Fontana ne Nettuno를 그대로 복제해서 만들었다. 어떤 사유인지는 모르지만 이탈리아의 포세이돈이 그냥 청동상인 반면 바투미의 포세이돈은 금도금 옷을 입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