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매화 / 박규리

april그이 2006. 4. 2. 18:35


      ♣ 청매화 / 박규리 ♣


      다른 길은 없었는가

      청매화 꽃잎 속살을 찢고

      봄날도 하얗게 일어섰다

      그 꽃잎보다 푸르고 눈부신

      스물세살 청춘

      오늘 짧게 올려 깍은 머리에서

      아직 빛나는데

      네가 좋아하는 씨드니의 푸른 바다도

      인사동 네거리의 생맥주집도 그대로다

      그 사람 떠나고 다시 꽃핀 자리마저 용서했다더니

      청매화 꽃잎 꿈결처럼 날리는, 오늘

      채 여물지도 않은 솜털들을

      야무지게 털어내다니

      정말 다른 길 없었느냐

      새벽이면 동학사로 떠날

      이른봄 푸른 이끼 같은 아이야

      여벌로 더 장만한 안경과

      흰 고무신 한 켤레 머리맡에 챙겨놓고 잠든

      너의 죄 없는 꿈을 마지막으로 쳐다보다

      눈부시도록 추울 앞날을 위해

      이 봄날, 떨리는 손으로 두툼한 겨울 내복 두 벌

      가방 깊숙이 몰래 넣었다






음악 : 이은미/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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